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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어느 시끄러운 사랑방]
![]() ![]() 이번 주 MBC 사극 '이산'에서 홍국영이 실각했다.(...짧게 말해 '캐박살났다'.) 죽을 뻔 했던 것이 어케 어케 잘 되어 강릉으로 귀양가는 선에서 끝났다. 그러나 예고편에서도 나오듯 홍국영은 귀양지에서 사망하고, 실제 사료에서도 누렸던 세도와 다르게 귀양지에서 곤궁하게 지내다가 화병이 나서 죽는다고 했다. 문제는 이 귀양이라는 형벌이다. 사극에서 이 형벌은 거의 빠짐없이 나온다. 관료나 양반만 이런 형벌을 당하는 게 아니라 일반 평민도 귀양을 가는 수가 있는데, 숙종때 울릉도, 독도를 지켰던 안용복도 귀양을 가게 된다.(안용복의 죄목은 '관료 사칭'이다. 어부인 사람이 일국의 관료라고 사칭하고 왜국과 외교적인 담판을 벌였으니, 아무리 의도가 좋아도 당시의 시대적인 상황으로선 절대 묵과할 수 없는 범죄였다.) 그런데 이 귀양이 다소 가벼운 처벌로 생각하는 인식들이 있는 것 같다.(거기 가서 사약을 받으면 캐안습하긴 하지만...) 이번에 나올 정약용의 경우에는 귀양 가서 저술활동을 많이 했을 정도로 여유있는 모습도 보여준다. 그런데 과연... 귀양이 그리 호락호락한 형벌이었을까? 조선조때 귀양갔던 인사들이 꽤 많고 그들이 관련해서 남긴 기록들도 꽤 있다. 여기서 어느 안습한 선비에 대한 기록을 보자. 이 양반은 당상관 자리에 있다가 임금에게 말 한 마디 잘못했다가 까여서 귀양가게 되었다. 귀양가는 도중에 드는 비용은 죄인이 스스로 마련해야 했단다. 그러니까 문초 당하다 터진 상처를 치료하는 약도, 귀양길에 가는 동안 먹을 밥도... 모두 자비로 충당해야 한다는 거였다. 이 양반의 경우는 당상관에 있어서 그나마 나았다. 그러나 소위 청빈했던 선비들의 경우는 어떠했을까? 괜히 귀양가다 죽었다느니 하는 말이 나오는 게 아니다. 단종의 경우도 영월로 귀양가면서 수행원들이 밥을 안 줬다고 하는데, 수행원들이 대략 나쁜 색키들인게 아니라 원칙적으로 그런 거였던 게다.(다행히 착한 백성이 단종 먹으라고 이것저것 챙겨줬다.) 고려 초에 왕건을 찾아온 요나라 사신도 왕건이 일부러 귀양보내면서 굶겨 죽인 게 아니라 돌봐줄 사람이 없는 이역만리였던 지라 가다가 굶어 죽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앞서 언급한 병이나 부상의 경우도 마찬가지라 장독에 걸려 죽든, 쓰러지든 죄인 스스로가 어떻게 극복해야 했다. 더구나 죄인을 호송하는 관졸들은 죄인의 안전을 책임지지 않았다. 그들은 죄인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감시하는' 것이니 길가다 호랭이가 튀어나와 죄인을 물든, 북방에서 여진족이 습격해서 죄인을 때려 죽이든 대략 신경을 안쓴다. 아무튼 이런 식으로 천신만고끝에 귀양지에 도착한다. 도착해서 아무일도 없으면 다행이다. 임금 잘못 만나면 가끔 상당히 골치 아픈 사태를 맞이하곤 했다.(연산군때 어떤 선비는 땅끝 해남으로 귀양갔는데 도착하자 마자 다시 먼 북쪽 변방으로 이동하라는 영이 떨어졌다. ...당근 도보로 가야 했다... OTL 사극에 보여주듯이 함거엔 잘 안태워 준다.) 아무튼 귀양지에 도착했으니 그 다음은 어떤가... 위리안치의 형벌을 받은 죄인들은 따로 머물러야 하는 곳이 있지만, 대부분 죄인들은 자기가 살 집을 구하고 관아에 신고해야 했다. 우리의 안습한 선비님께선 직접 집을 지었는데, 온돌을 안깔아서 허물고 또 지어야 했단다...OTL 거기다 집 지을 비용도 없어서 그 지방 농부네 담장 쌓는 일을 도와주면서 한푼 두푼 모았다고 한다. 자, 어떻게 집은 지었는데 이제 생활비가 문제다. 글읽는 양반들이 할 줄 아는 게 뭐 있겠는가? 당연히 귀양지에서 서당 훈장하는 사람들이 나타나는데, 엄연히 말해서 이건 '불법'이다. 관아에서 대략 눈감아 주니 다행이다.(국영이 처럼 고기잡고 농사짓는 양반들도 있지만, 이건 자주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동네 애들을 모아 가르치는데 서당 학비는 요즘 처럼 선불이나 월마다 내는 그런 것이 아니다. 보리나 쌀을 추수할 계절에 애들 부모들이 쌀 한 말, 보리 한 말, 어쩔땐 김치 한 독씩 갖다 줘서 먹고 사는데, 이게 선불이 안되니 난감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선비는 관아에 찾아가서 고을 이방에게 고리로 돈을 빌렸다. 이 악덕 이방은 이자를 올리기 위해 서당 애들 부모들과 작당해서 서당 학비를 최대한 늦추게 만든다. 당연히 귀양지에서 이 선비님은 쫄쫄 굶는 것도 서러운데 신용불량자가 되어가는 것이다. 다행히 이 선비님 운이 좋아서 임금 마음이 풀리고 복직하게 되었다. 다시 당상관이 되었으니 고을 이방따위에게 빚진 건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다만 악덕 이방에게 이갈리게 시달린 것은 있을 터... 대략 이 고리대금 이방을 한양으로 불러들여 캐박살의 보복을 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을 것이다. 그러나 보복은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다. 만약 했다고 치자... 어떤 상황이 벌어지는가 하면 대략 다음과 같은 상황이 벌어진다. 1. 이방이 잡혀갔다. 2. 해당 고을 행정이 마비된다. 사또가 열받는다. 3. 열받은 사또가 임금한테 항의 상소문 쓴다. 4. 임금에게 '전하, 전에 귀양왔던 색키가요... 울 동네에서 불법서당까지 하는 것도 눈감아 줬는데 이노무 자식이 이방이 좀 그랬다고 복직 되고 나서 보복행위를... 이 색키가 귀양지에서 불법서당만 한게 아니라 공유지 불법 개간(...)에 행실이 매우 불량했는데다가 시불렁 시불렁... 아무튼 이 작자 땜에 우리 고을 행정이 마비되어 백성들이 고통받아... 구시렁구시렁...' ...라는 상소가 전해진다. 5. 하루에도 수백개씩 쏟아지는 상소문과 싸우는 임금님이 이거 보고 '아니, 이 쉑은 내가 머리 좀 식히라고 귀양 보내 줬더니 거기가서 이딴 짓을 해? 더구나 보복행위까지 해서 고을 행정을 마비시켜?'...라며 열받는다. 6. 열받은 임금님이 복직된 선비 불러다가 도로 귀양을 보낸다. 선비는 또 안습의 세월을 보내야 한다... 이러니 감히 보복은 꿈도 못꾸게 된다. 물론 귀양가서 탱자탱자 잘 지내는 양반들도 있다. 이런 사람들의 대부분은 대략 상당한 유명인사거나, 세도가 있는데 비리문제로 잠시 실각한 상태의 인사들이다.(이런 사람들은 귀양 갈 때도 뭔가를 타고서 편안하게 간다.) 그런 사람들에 대해서 고을 사또가 신경을 안 써줄 수가 없다. 공적으로 지원하는 것은 물론 불법이지만, 연줄 대려고 사적으로 이리저리 챙겨주는 관원들이 꽤 있었다.(이래서 사람은 잘 나야 하나보다.) 물론 이도 저도 아닌 캐잡범이거나 흉악범, 그리고 홍국영같은 대역죄인인 경우엔 알짤 없다.(홍국영 같은 경우는 하루에 먹을 식량조차도 세세하게 제한받을 정도였다고 한다.) 아무튼 귀양은 절대 웰빙형 형벌은 아니다. 정약용같은 사람에겐 웰빙이 되었는 지 몰라고, 대부분의 경우는 '정부 공인 서바이벌 형벌'인 것이다. 이미지 출처 : MBC 드라마 '이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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